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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은 지금 복원중입니다.”

2011~2021 소주방 및 흥복전(총28동) 2019~2023 동궁, 오위도총부 영역(총14동) 2026~2034 궁중통치권역, 궐내각사영역(총14동) 2031~2042 궁중의례권역, 선원전/혼전영역 (총23동) 2040~2045 궁중방어권역, 십자각/내사복 영역(총1동)
흥선대원군 중건구역
1차 복원구역
2차 복원구역
2차 1단계
2차 2단계
2차 3단계
2차 4단계
2차 5단계
경복궁 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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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光化門)

임금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의 광화문은 1395년에 세워졌으며, 2층 누각인 광화문 앞의 양쪽에는 한 쌍의 해치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다. 광화문의 석축부에는 세 개의 홍예문(虹霓門, 아치문)이 있다. 가운데 문은 임금이 다니던 문이고, 나머지 좌우의 문은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었는데 왼쪽 문은 무신이, 오른쪽 문은 문신이 출입했다. 광화문은 한국 전쟁으로 두 차례 소실되었으며, 복원공사가 완료되어 2010년 8월 15일에 공개되었다.

광화문 전경

장고

(醬庫)

장고는 궁중 연회나 제례에 쓰이는 장을 보관하던 곳이다. 큰 잔치가 있을 때는 임시주방인 숙설소가 장고 가까이에 설치되었으며 장고마마가 장독들을 관리하였다. 현재 장고의 모습은 2005년에 복원한 것으로 경사지를 활용한 계단식 장독대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전시된 독은 2007년에 전국에서 수집한 것으로 우리나라 독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장고 전경

함화당

(咸和堂)

이 전각의 용도는 침전이다.
당시에 고종과 명성왕후는 주로 건청궁에서 지냈는데, 함화당이 완공되자 이곳과 건청궁을 번갈아 사용했다. 1892년부터는 함화당에서 신하와 정무를 논하고 외국 공사를 접견했다.

함화당 전경

태원전

(泰元殿)

태원전은 고종 5년(1868)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종 9년(1872) 태조와 원정의 어진을 봉안하였으며 고종 27년(1890)에는 신정왕후의 빈전으로, 고종 32년(1865)에는 명성황후의 빈전으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철거 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2005년에 복원한 것이다.

태원전 전경

향원정

(醉香橋)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옛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새롭게 조성하였는데 연못 한가운데 인공의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정자를 지어서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향원정이라 불렀다.
향원지를 건너는 다리는 “향기에 취한다”는 뜻의 취향교(醉香橋)이다.

향원정 전경

건청궁

(乾淸宮)

건청궁은 향원정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종 10년(1873)에 건립되었다. 왕의 처소인 장안당, 왕비의 처소인 곤녕합⋅옥호루로 이루어졌으며 곤녕합은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때 명성황후가 살해된 비극의 장소이기도 하다. 융희 3년(1909)에 훼철된 후, 1939년에 조선총독부미술관이 들어섰으며 2007년에 복원하였다.

건청궁 전경

집옥재

(集玉齋)

집옥재는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과 건청궁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고종 28년(1981)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던 집옥재⋅협길당 등을 이건한 것으로 서재와 외국 사신접견소로 사용되었다. 집옥재는 양 옆을 벽돌로 쌓아, 전통양식에 중국풍을 일부 가미하여 만든 건물로 좌⋅우에는 팔우정과 협길당이 하나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집옥재 전경

자경전

(慈慶殿)

자경전은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중건할 때 흥선대원군이 고종의 양모인 조대비[신정왕후 조씨]를 위해 지은 것이다. 조대비는 고종의 즉위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이다. 중건 이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25년(1888)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자경전 십장생 굴뚝은 자경전 뒷담의 한 면을 돌출시켜 만든 것이다. 굴뚝 한가운데는 십장생 문양을 구워 박아 넣었고, 위 아래로는 학과 불가사리, 벽사상 등을 배치하여 악귀를 막고 장수를 기원하는 벽사의 의미를 담았다.

자경전 전경

근정전

(勤政殿)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正殿)으로 '근정(勤政)'이란 이름에는 '천하의 일을 부지런히 하여 잘다스리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경복궁을 대표하는 상직적인 건물로 가장 화려하고 권위가 있어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곳이기도 하다.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과거 및 외국 사절의 접견 등 국가의 공식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오늘날의 근정전은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 4년(1867)에 중건한 것이다.

근정전 전경

수정전

(修政殿)

수정전은 고종 4년(1867)에 지어진 것으로 당시의 궐내각사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세종 때에는 한글창제의 산실인 집현전이 이곳에 있었다. 궐내각사는 수정전 앞에 밀집되어 있었는데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면서 일본에 의해 대부분 철거되었다.

수정전 전경

동궁

(東宮)

동궁은 차기 왕위 계승자인 세자의 활동 공간이다. 세자는 떠오르는 해처럼 다음 왕위를 이을 사람이기에 궁의 동쪽에 배치하고 동궁이라 불렀다. 조선 초에는 동궁이 궁궐 밖에 있었고, 궐 안에 동궁전을 짓기 시작 한 것은 세종 9년(1427)의 일이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4년(1867) 중건되었다.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개최를 구실로 일본에 의해 완전히 철거되었다. 오늘날의 동궁 일원은 1999년에 복원한 것이다.

동궁 전경

소주방

(燒廚房)

소주방은 조선시대 왕의 수라와 잔치음식을 준비하던 궁중부엌으로 태조 4년(1395) 경복궁 창건 때 건립되었다. 소주방은 왕과 왕비의 일상 진지를 지어 올리는 내소주방(內燒廚房), 궁중의 잔치, 고사 음식을 차리던 외소주방(外燒廚房), 왕의 간식인 다식, 죽, 떡 등을 차리던 생물방(生物房)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 철거된 것을 2015년에 복원한 것이다.

소주방 전경

경회루

(慶會樓)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에게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그 밖에 과거시험이라든가 기우제 등이 설행 되기도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새로 만들고 누각도 크게 지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고종 4년(1867)에 중건한 것이다.

경회루 전경

강녕전

(康寧殿)

강녕전은 왕의 일상생활 공간인 침전(寢殿)으로, 연침(燕寢), 연거지소(燕居之所) 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왕은 독서와 휴식등 일상생활 뿐아니라 신료들과 편안히 만나 국정 현안을 의논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가 고종 2년(1865)에 중건되었다, 1917년 화재로 창덕궁 희정당이 소실되자 희정당 중건을 위해 옮겨졌다. 지금의 강녕전은 1995년에 복원한 것이다.

강녕전 전경

흥복전

(興福殿)

흥복전이 들어선 자리는 아미산 북쪽으로 임진왜란 이전에는 소규모의 정자 정도만 있었고 큰 전각은 없었다. 흥복전은 경복궁 중건 이후 두 차례의 내전 일곽 화재에서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고종이 1885년 경복궁으로 환어한 후에 만경전과 함께 공식적인 행사와 왕의 정무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1890년에는 대왕대비 신정왕후가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흥복전 전경

교태전

(交泰殿)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다. 이곳에서 왕비는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궐 안의 살림살이를 총지휘하였다. 세종 22년(1440)경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가 고종 2년(1865)에 중건되었다, 1917년 화재로 창덕궁 대조전이 소실되자 대조전 중건을 위해 옮겨졌다. 현재의 교태전은 1995년에 복원한 것이다.
아미산은 교태전의 후원으로, 화단을 계단식으로 쌓아 만든 화계(花階)이다. 현재 4개의 굴뚝이 서 있는데 6각형으로 된 굴뚝벽에는 덩굴무늬, 학, 박쥐, 봉황, 소나무, 매화, 국화, 불로초, 바위, 새, 사슴 따위의 무늬를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교태전 전경

사정전

(思政殿)

사정전은 왕의 집무실인 편전(便殿)으로 최고통치자인 왕이 공식전인 업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신하가 매일 왕을 배알하던 약식 조회인 상참(常參)을 비롯하여 경연(經筵), 윤대(輪對) 등 일상적인 국정운영이 이루어졌다.
현재의 사정전은 고종 4년(1867년)에 중건한 것이다.

사정전 전경